참교육 실천 앞장 이일여고 정우식 교사
"경쟁 넘어 소통으로 학생 주인되는 교육"…아이들 미래위해 청소년 활동 지원을
작성 : 2009-09-21 오후 8:03:43 / 수정 : 2009-09-21 오후 8:43:50
이성원(leesw@jjan.kr)
이일여고 정우식 교사의 수업 모습. 정우식 교사는 바른 교육을 위해 건강한 학부모·시민모임이 활성화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이강민(lgm19740@jjan.kr) |
"당시 비평준화의 병폐가 너무 컸습니다. 교사들은 수업도 못하고 2학기 내내 우수학생을 유치하기 위한 스카웃 전쟁을 벌였습니다. 새벽 1~2시까지 가정방문을 했습니다. 학교간 비방이 일상화됐고, 학교들이 장학금 기숙사비 등 조건을 내걸고 학생들과 거래를 했습니다. 교사와 아이들의 관계도 왜곡됐습니다. '참고서 사준다고 약속하고선 왜 안사주느냐?' 이런 식이었습니다. 아이들이 교사를 영업사원처럼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지난 6월과 7월, 자율형사립고 지정을 둘러싸고 익산지역이 갈등과 분열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드는 모습을 지켜본 이일여고 정우식 교사(48)는 10여년 전을 떠올렸다. 자율형사립고의 지정은 평준화의 틀을 깨는 계기가 되고, 결국 10여년 전으로 회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전교조 고창지회장을 하다가 95년 이일여중으로 전입한 그는 2년 뒤인 97년에 이일여고로 옮기고 나서 익산지역 비평준화의 병폐를 실감하게 됐다.
"이건 교육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시민과 교사들이 대책위를 구성하고 나섰습니다. 교사대책위 사무국장을 맡았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평준화지역으로 고시하기 위해서는 국무회의까지 거쳐야 했고, 지역 내에서도 30~40%는 비평준화를 지지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각 학교의 대표자들을 뽑아 주 1회 이상 회의를 갖고 학교 간 의견을 조정했습니다. 소식지도 내고, 성명서도 내고, 선전전도 벌였습니다. 당시 익산시내에 아파트가 4만 세대였는데 모든 세대에 소식지를 넣기도 했습니다. 교사와 학생들이 돌아다니며 일일이 우유투입구에 넣었습니다. 국회의원도 많이 만났고, 정당도 찾아다녔습니다."
우리나라에 고교평준화가 도입된 것은 1974년. 입시과열 해소가 목적이었다. 그러나 익산과 군산 등 전국 6~7개 도시는 90년 들어 기습적으로 비평준화로 돌아섰고 지역 내에서 크고 작은 반목과 갈등을 겪었다. 다행히 익산시고교평준화실현시민대책위의 활동에 대해 국민의정부가 공감했고, 정부는 2000년 익산과 군산지역을 평준화지역으로 고시했다.
그러나 이러한 굴곡진 역사는 익산지역에 고교생이 만드는 고교생 신문인 '벼리'의 태동을 가능하게 하는 토양이 되기도 했다.
"학생들이 시내에서 만나도 학교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서로 으르렁거렸습니다. 어른들의 학연갈등이 아이들에게 대물림된 것입니다. 학교 간 경쟁을 뛰어넘는 아이들끼리의 소통공간, 문화적 배설창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벼리를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이해찬 장관 시절이라 보충수업, 자율학습이 폐지되고 아이들이 지금보다는 마음의 여유가 있었습니다. 학생의 날을 전후한 1주일을 청소년 문화주간으로 선포하고 성황리에 축제도 치렀습니다. 학교마다 6~7개씩 동아리활동이 활성화됐고 교류도 활성호됐습니다. 이런 분위기속에서 '벼리'도 연 10회 정도 발행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렵습니다. 아이들이 심적으로 ?기고 학부모들의 지원도 약해지고 있습니다. 학교마다 동아리 학생모집이 안됩니다."
'벼리'의 지도교사로 시작해서 편집인과 발행인을 지낸 정교사의 입장에서는 현재의 상황이 아쉽기만 하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다양한 청소년 활동들을 지원해줘야 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어떻습니까? 교육현장에서 보면 모든게 대학 중심입니다. 고교들이 대학에 맞추다보니 모든 것들이 왜곡됐습니다. 내신성적은 뭡니까? 대학에 종속된 개념입니다. 학생들에 대한 평가에는 교사가 학생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한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입을 위한 줄 세우기가 되면 진정한 평가를 할 수 없습니다. 성취동기를 부여하기 위한 문제를 출제하면 내신 부풀리기란 말이 나옵니다."
정 교사는 입학사정관제 등 정부의 새로운 입학전형에 대해서도 본래의 취지를 살리지 못한채 너무 경쟁위주로 치닫고 있다며 우려의 시각을 드러냈다.
"몇 년 전 우리학교에서 서울대 천문학과 1차 서류심사에 합격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천문학에 대해 관심도 많고 나름대로 준비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면접에 갔다 온 뒤 첫 마디가 '선생님 어렵겠습니다' 였습니다. 여건이 좋은 수도권 아이들과는 경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입학사정관제가 기존의 서열화 된 점수구조에서 벗어나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어야 하는데 더 준비된 아이들만 기회가 있습니다. 경제적 문제 등 다른 여건 때문에 발굴하지 못했던 아이들을 발굴해야 하는데 기존의 성적우수자를 수월하게 뽑아갈 수 있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결국 수도권 중심입니다."
전북교육시민연대 집행위원장, 익산교육시민연대 상임운영위원, 전북청소년교육문화원 부위원장이자 이사로 참된 교육을 위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정 교사는 요즘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현 정부가 자율형 사립고에 대해 집착을 버리지 않고 있어 내년에 또다시 지역 내에서 자율성 사립고를 둘러싼 논쟁이 불거질 것으로 우려되기 때문이다.
"시민과 학부모 수준의 교육단체 구성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결국 모든 문제는 학부모와 시민들로부터 풀어가야 합니다. 실질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건강하고 강한 학부모·시민모임이 활성화 돼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