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답사]‘만경강 억새길-춘포’를 걷다.
‘만경강 억새길-춘포’를 걷다.
코로나19 시기에 가장 걷기 좋은 곳은 아마도 만경강 물억새길 일 것 같다. 본원에서는 몇 달 만에 향토문화걷기 행사로 가슴이 시원한 만경강 억새길과 춘포지역을 답사하였다. 11월 7일(토) 10시, 집결지인 춘포역에는 약 20여명의 교사, 회원들이 모였다. 모처럼 야외에 나오니 반갑고 가족 단위 참가자가 여러 팀 있어 분위기도 훈훈했다.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간이역이라는 춘포역사는 초라하였고 문도 잠겨있어 안타까웠다. 먼저 이미영(본원 연구소)대표의 만경강을 중심으로 전주-익산-군산을 잇는 지역에서 일어난 일제의 수탈과 침략사를 들었다. 러일전쟁(1904) 직후부터 들어오기 시작한 일본인들의 대농장, 전국 최초 신작로인 전군도로 완공(1908), 철도 부설(춘포역 1914) 등, 관개시설을 위한 수리조합, 만경강 대아댐(1922), 직강공사(1925-39) 등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다. 당시 고율소작제에 착취당하고, 관개공사에는 수십만 명씩 동원되어 맨몸으로 일했던 농민들의 고충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하였다. 특히 춘포(일제 당시 대장촌)엔 러일전쟁 직후 호소카와가 등 일본인들이 진출하여 순일본식 촌락을 조성하였으며, 춘포역(당시 대장역)은 일본으로 쌀을 수탈해가는 주요 통로였다. 비자민당 출신 첫 총리인 호소카와 모리히로(일본 전 총리)가 대장촌 대지주였던 호소카와의 손자인데 과거사 문제와 관련 유일하게 “태평양전쟁은 침략전쟁이며 잘못된 전쟁이었다.” 한반도 식민통치에 대해 “참기 힘든 고통을 끼쳤다. 우리의 행위를 깊이 반성하며 마음으로부터 사과드린다”는 반성을 한 인물이기도 하다. 일행은 정우식(본원 이사장)선생의 안내로 춘포역에서 걸어 구 일본인가옥(국가 등록문화재 제211호)으로 향했다. 현재도 주민이 거주하고 있는 집이었는데 비교적 보존이 잘 된 전형적인 일본식 가옥으로 호소카와 농장 관리인 에토가 1940년경 농장 안에 지은 2층 건물이라고 했다. 부근에 1914년 호소카와 일본인 대지주가 세웠다는 도정공장인 대장공장은 일반정미소 12개 규모인 정미기 12대를 가동했을 정도의 대규모 공장이었다고 한다. 이윽고 구하도(직강공사 이전)였던 우각호를 지나 만경강 둑에 올라서자 드넓은 억새바다가 나타났다. 기행단은 구담교 가운데로 걸어가 장쾌하게 흐르는 만경강과 만개한 억새바다를 조망하였다. 지금은 억새밭이지만 과거엔 둑 안에도 대부분 논농사를 지었고, 1960, 70년대만 해도 춘포, 백구 일대엔 만경강 모래찜을 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수백 명씩 춘포역에 드나들었다고 한다. 일행은 춘포나루 방면으로 강둑을 걸으며 또는 자전거도로에서 드넓은 강변을 마음껏 감상하였다. 춘포나루에 도착하니 제법 폭이 넓어진 강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여행자들을 위한 휴식공간인 정자에서 김밥을 먹으며 정우식선생으로부터 물억새와 억새를 구분하는 법, 춘포의 본 이름인 봉개, 삼포리, 창평리 등 마을이름의 유래를 들었다. 안타깝게도 철새 조류독감 예방으로 억새밭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었기에 다시 강둑을 따라 출발지인 춘포역으로 향했다. 한 낮인지라 가을 햇볕이 뜨거워 둑길을 걸으며 바라보는 억새바다가 더 좋았다. 소설가 윤흥길과 정양 시인 등의 작품이 있는 춘포문학공원을 둘러보며 춘포역에 도착하니 오후 2시였다. 이번 만경강 억새길을 걸었던 대부분 참가자들은 만경강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전북도민의 삶과 역사가 살아있는 아름다운 만경강을 청소년들의 교육문화공간으로 꼭 살려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전북청소년교육문화원. 20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