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에서 학교는 씨앗이다
작성 : 2005-12-05 이미영, 전북일보
"한정된 구호자금 때문에 한 마을은 씨를 배분하고 그 옆 마을은 씨를 주지 못했는데 안타깝게 비가 오지 않아서 파종한 씨앗은 싹을 틔우지 못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씨를 나누어준 마을 사람들은 씨를 심어놓았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수확기까지 한 명도 굶어죽지 않았는데, 옆 마을은 아사자가 속출했다고 한다." 국제긴급구호요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비아님의 책 한 구절이다.
얼마 전 교육부가 발표한 "100명 이하의 농어촌소규모학교 통폐합"정책을 접하면서 자꾸만 앞의 아프리카의 마을 이야기가 떠오른다. 쌀값하락으로 농심은 타들어 가고 앞으로 농사대책이 막막한 상황에서, 학교마저 없애겠다는 것은 벼랑에 내몰린 농민들에게 "앞으로 농촌에서 희망을 얘기하지 마라"는 정부의 생각을 보여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농촌지역에서 학교는 씨앗이다. 농사를 짓는 희망이고 농촌을 지키는 이유이다. 교육부가 저출산, 이농현상을 감안하여 농촌학교를 폐교한다고 하나, 농촌의 학교는 젊은이가 농사를 지으며 자녀를 기를 수 있는 최소한의 생활기반 시설이 아니던가!
농촌학교 통폐합은 이미 98년 김대중 정부시절, 추진됐던 정책으로 도내에서는 98년-2000년 3년 동안 무려 100여 교가 급속히 사라졌었다. 그러나 이 정책은 농촌교육의 붕괴, 이농의 가속화로 농촌지역의 황폐화라는 문제점을 야기, 지난해부터 정부는 관련법을 제정, 인위적인 통폐합을 지양하고 작은 학교 활성화정책을 추진해오고 있는 상황에서 불과 1년만에 또다시 정책을 뒤집고 있는 것이다. 98년 당시에도 도교육감 의지에 따라 지역마다 학교통폐합 비율이 달랐으나, 전북교육청은 농도라는 지역상황과 여론을 고려하기보다 시도교육청평가 1위에 매달려 오히려 통폐합에 앞장섰던 아픈 기억이 있다. 이번 교육부의 발표 직후 제주교육청이 "학교통폐합을 유보하겠다"고 즉각 선언한 것은 눈여겨볼 일이다.
현재도 대다수의 학부모와 주민이 동의하면 학교통폐합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은 단지 학생 수 100명의 숫자를 기준으로 인위적으로, 반강제적으로 학교통폐합을 추진하겠다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100명이라는 숫자는 대도시 감각으로는 작고 하찮은 수로 보일지 모르지만, 농촌지역에서는 소중하고 든든한 지역의 기둥을 만들 수 있는 수이다. 더욱이 농도인 우리지역은 학생 수 100명 이하의 학교수가 초등학교 218개교 51%, 중학교 82개교, 41%에 해당하는 다수이다. 농촌지역에 거주한다는 이유로 학생, 학부모들이 헌법에 보장된 교육받을 권리를 침해당해서는 안된다. 이미 선진국, 아니 국내의 많은 농촌 학교들이 지역실정과 작은 학교에 알맞은 교육과정을 개발하여 교육의 질을 높여 돌아오는 농촌학교를 가꾸어가고 있지 않은가! 올해 도교육청도 농촌교육활성화라는 과제를 가지고 농어촌지역 무료급식, 분교의 본교환원, 자율성 강화정책 등을 이제 시작하고 있는 시점이다.
최근 교육부가 법정교원확보, 교육여건 개선 등을 얘기할 때 필자는 불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당연히 환영해야 할 일이지만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이는 필시 농촌교육의 희생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교육부는 곧바로 농촌학교 통폐합 정책을 발표하였다. 98년 통폐합 시기는 IMF라는 특수상황도 있었지만 더 큰 이유는 교원정년단축으로 인한 부족한 교원을 메꾸기 위한 수단이었다. 최근 정부의 교육 정책과 예산투자는 대도시 중산층 학부모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듯 하다. 이에 따라 전국에서도 인구수가 적고 농촌 학교 수가 많은 전북지역에서는 조석으로 바뀌는 정부의 정책에 춤추기보다 전북지역 실정과 조건에 맞는 교육정책을 개발하고 소신껏 추진하는 진정한 교육자치가 필요하다. 이에 도교육위원회가 농촌학교통폐합반대결의문을 채택한 일은 매우 다행스럽다. 그러나 이제 전북교육은 교육당국만의 의무와 책임뿐 아니라 전북도민 모두가 지켜야 할 몫이다.
/이미영(전북청소년교육문화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