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식칼럼] 우리는 언제쯤 행복할까?
2006년 06월 12일 (월) 새전북신문
‘나는 지금 행복한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런데 아쉽게도 미래로 미래로 행복이 계속 유보되어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어릴 적, 지금보다 심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중학교 때부터 소위 명문고 진학을 위해 그 시절의 모든 꿈과 행복을 잠시 접어두어야 했고, 고교시절에는 말할 것도 없이 사회적 성공에 더 유리한 것으로 알려진 이른바 일류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 또 사춘기의 넘쳐나던 꿈을 누르고 행복을 유보해야만 했다. 마침내 대학에만 진학하면 모든 것이 다 얻어지리라고 근거도 없이 기대했지만 이 역시 허상이긴 마찬가지였고 다시 더 나은 직장을 얻으면 가능해질 것이라고 합리화하며 행복은 뒤로 밀려만 갔다. 이마저도 30대엔 40대로, 이제는 또 노후로 미루어져만 가는 것은 아닌지.
행복을 유보하는 삶의 연속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요즘 아이들의 삶을 보면 이런 나의 지나온 삶과 견주어도 너무 끔찍할 정도로 행복은 언제나 미래형으로써만 존재할 뿐 현재의 행복은 계속 유보되는 삶을 반복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지금 아이들은 벌써 유치원 시절부터 초등학교 생활을 위한 삶을 시작하여 그 뒤엔 또 다음 단계를 위한 삶을 살뿐 ‘오늘의 삶’은 없는지도 모른다. 어른들이 그렇게 내몬다. 왜 그런가를 생각하다 보니 오늘의 행복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이런 모습이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한 결과주의와도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알았다. 결과는 늘 맨 나중에 나온다. 불확실한 것일수록 더욱 그렇다. 삶의 불확실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결과주의는 필연적으로 미래형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과정은 언제나 현재형이다. 물론 과정뿐 아니라 결과도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결과에만 매달린 채 과정을 너무 소홀히 하거나 무시한다. 결과를 중시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과정을 소홀히 하는 것이 문제이다. ‘매일 매일 나의 삶을 어떻게, 또 얼마나 행복하게 가꾸어 갈까?’ 보다는 ‘몇 년 후에 무엇이 될까?, 무엇을 성취할까?’에만 온통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것이다. 당연히 미래를 위해 현재의 삶은 유보될 수밖에 없다. 이런 삶의 방식은 현재의 행복은 영원히 누리기 어렵게 만들지 모른다. 한국 팀이 져도 행복해할 수 있다면 과정 하나하나를 중시하고 그에 최선을 다하며 매순간 기쁨을 느낄 수 있다면 우리 삶은 얼마나 행복할까?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삶의 패러다임을 이런 방향으로 되돌려가는 건 불가능할까? 오늘 밤에 기대하던 독일 월드컵 첫 경기 한국과 토고전이 열린다. 아마 나도 밤잠 설치며 ‘대~한민국’을 외치고 열심히 한국 팀을 응원할 것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우리는 축구 자체를 즐기고 경기를 보면서 행복해하기보다는 지나칠 정도로 16강, 8강 등 결과에만 관심을 가지는 듯해서 씁쓸할 때가 있다.
그러나 이제 축구경기 자체를 즐기면 어떨까? 이기면 말할 나위 없이 더 좋겠지만 지면 또 어떠랴. 이기면 이긴 대로 즐겁고 지더라도 불행해 지지는 말자. 우리 선수들이 땀 흘리며 열심히 뛰는 모습에 박수를 보내고 박지성, 이영표의 환상적인 몸놀림에 흥분하며 비록 상대 팀일지라도 아데바요르의 멋진 모습이 나오면 덩달아 흥겨워 할 일이다. 누가 됐든 훌륭하고 창의적인 플레이를 연출하면 그것에 마냥 흡족해하고 행복해할 수 있으면 좋겠다.
결과의 기쁨은 순간에 그치지만 과정에 만족할 줄 알면 그 행복은 매순간에 걸치므로 오래이다. 오래도록 행복할 수 있는데 어찌 짧은 결과의 행복만을 취하랴? 과정도 결과도 다 행복의 근거인 것을. 나는 오늘 밤 설령 우리 팀이 지더라도 침통해 하지 않으련다.
/사단법인 전북청소년교육문화원 정책기획실장